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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쉐의 디자인 철학

포르쉐 설립자의 손자이며 포르쉐 911을 디자인한 페르디난트 알렉산더 프로쉐 교수가 세운 포르쉐 디자인 스튜디오는 1972년 슈투트가르트에서 문을 열었다가 2년 후 젤암지로 이전했다. 포르쉐 911은 출시와 동시에 최고의 스포츠카로 각광받으며 디자인의 고전 반열에 올랐는데, 포르쉐 교수가 디자인한 차들은 전부 그랬다. 몇 년쯤 지나서 그는 직원 10여 명과 함께 시계와 안경, 필기도구 등을 필두로 한 '포르쉐 디자인' 브랜드로 고전적인 남성용 액세서리 시장을 석권했다. 그러면서 오스트리아 수도 빈을 달리는 전차를 비롯해서 'F.A.포르쉐 디자인'이 새겨진 가정용 제품과 일반 소비재의 산업 디자인에도 투자를 게을리하지 않았고 세계 굴지의 클라이언트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탁월함을 생명으로 하는 포르쉐의 명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포르쉐 디자인의 철학과 좌표를 훼손하지 않고 반영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기능적인 면과 시각적인 면에 접근하는 철학이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긴 하지만, 여기서 내가 말하는 건 포르쉐 자동차가 아니라 '포르쉐 디자인' 제품들이다. 그래서 우리 제품들은 시대를 초월해서 요건을 충족하는 접근법을 요구한다. 포르쉐 디자인 제품들은 첨단 기술과 최상의 재질, 그리고 최고 품질을 확보해야 한다. 우리의 디자인 철학은 외양을 넘어 내부구조까지 깊이 반영되어야 한다. 기능도 외양만큼 중요하며, 필요 이상으로 과도한 디자인 요소는 가미하지 않는다.

(이어서)

우리의 디자인 접근법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는 포르쉐 디자인 f09 선글라스다. 우리는 포르쉐 디자인 설립 초창기부터 선글라스에 관심을 두어왔다. 얼굴을 감싸는 스타일의 랩어라운드 선글라스가 보편화되었을 때, 우리도 포르쉐 디자인 철학에 걸맞은 제품을 출시했다. 윤곽선을 따라 얼굴을 편안하게 감싸주면서도 미적인 제품이었다. 그런데 곧 우리는 큰 문제점을 하나 자각했다. 선글라스를 벗어서 주머니에 챙겨 넣을 때 두툼한 부피가 거추장스럽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함께 모여 고민했다. '착용했을 때는 완벽한 랩어라운드 상태가 되고, 주머니에 넣을 때는 평평하게 접히는 선글라스를 만들 수 있을까?'

 

이 고민을 풀기 위해 다양한 접근법을 고민하던 차에 한 사람이 대단히 창조적인 제안을 했다. 그의 작업 방식은 팀 안에서도 좀 남달랐다. 드로잉을 거의 하지 않고 카드보드로 3차원 모형을 제작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자기 생각을 좀 더 쉽게 전달할 수 있었다. 그는 선글라스를 접고 펼치는 움직임을 3차원으로 보여주었다. 개략적인 모형이었지만 기본 특징은 이해할 수 있었다. 독특한 해법을 적용한 그 디자인은 9밀리미터 크기로 거의 평평하게 안경을 접을 수 있게 했다. 그리고 다시 쓰고 싶을 때는 안경테에 '힘을 줘서' 폴리탄산에스테를라는 합성수지로 제작된 렌즈가 원형을 회복하면서 다시 완벽한 랩어라운드 형태로 돌아오게 한다.

(이어서...)

이 모델이 시중에 나온 지는 꽤 됐다. 그 원본 제품을 한 단계 향상한 새로운 디자인은 지금 출시를 앞두고 있다. 새 제품은 안경을 펼치기만 하면 폴리탄산에스테르 스크린 렌즈가 저절로 원상 복구된다. 우리는 완전히 새로운 개념을 완벽하게 만들었고, 그걸 다시 새로운 차원으로 격상시켰다. R09 선글라스는 포르셰 디자인의 업무 처리와 디자인 과정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항상 탁월한 기능과 아름다운 오양을 겸비한 남다른 제품 개발에 땀 흘리는 우리의 노력이 잘 반영되어 있다.

 

우리의 철학은 산업디자인 초창기에 독일에서 큰 흐름을 주도했던 바우하우스 독트린으로부터 갈라져 나왔다 바우하우스 독트린은 단순한 디자인과 뛰어난 제품 기능을 상징한다. 포르쉐 디자인의 철학은 유럽, 더 구체적으로는 독일의 영향을 받은 디자인 언어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일은 뚜렷한 정체성을 전달하는 디자인 기호를 보유하는 것이다. 대중적인 각광은 받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현대예술 계열의 상품 디자인과 이데올로기를 사랑하고 주목하는 사람들에게는 확실히 매혹적으로 다가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