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고통을 견디는 방법
나이가 더 많은 사람과 이야기할 때,
나이에 걸맞은 지혜가 있는 사람이라면
삶에서 가장 중요한 지속적인 의미는
타인에 대한 상호적 봉사와
자발적인 책임의 결과라는 것을 알고 있죠.
그걸 삶의 질에 대한 제한으로 생각해선 안 됩니다.
사람들은 결혼은 불필요한 관료적, 지배적
억압적 가부장제이고,
아이들은 불필요한 책임감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건 쓰레기 같은 말입니다.
커리어와 교육에도 똑같이 해당됩니다.
그건 당신의 기회라고요.
인생에서 중요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이고,
그걸 잡아야 할 겁니다.
당신은 삶의 극심한 고통을 겪게 될 테니까요.
자신의 존재를 이해할 수 없을 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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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런 상황에서 운이 좋다면
정직하고, 생산적이고, 관대한 개인으로 살았기에
생성된 선한 의지를 갖게 될 거고,
인생의 최악의 폭풍을 견딜 수 있는
작은 아크를 갖게 될 겁니다.
이건 보수주의자들이 젊은이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메시지죠.
'책임감을 통해 삶의 지속적인 의미를 찾는다'
그건 사실입니다.
제가 임상 심리학자로서 목격했던 결과들입니다.
고립되고 외로운 삶의 절박한 혼돈을
정리하게 도와주죠.
무의미한 삶, 고립과 원한 속에서 확장된 삶
책임감의 질서를 거부하는 삶
진실되게 책임감을 짊어지고,
자발적인 헌신이 지속적인 의미와
얼마나 통합되어 있는지 이해해야만 합니다.
그게 필요할 거고 제 말을 명심하세요.
...
자신이 비참하다면
비참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다면
내가 비참한 건 심리적으로
잘못 구성되어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이 관계가 엉망진창이기 때문일까
정답은 둘 다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묻겠죠.
만약, 이런 상황이라면 제정신으로 살아갈 수 있었을까?
만약, 내 삶에 친밀한 관계도 없고 자녀도 없고,
가까운 가족 유대도 없고,
부모도 없고, 형제자매도 없고,
친구도 없고, 그 어떤 사회적 공동체도 없었다면
심리적으로 잘 통합될 수 있었을까?
그에 대한 대답은 명백히 아니 오겠죠.
예를 들어, 반사회적인 사람일지라도
독방에 감금시키며 강력하게
처벌할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고,
심리적 안정이 사회 집단의 계층 구조에
얼마나 의존적인지를 알 수 있죠.
따라서, 정체성과 온전한 정신 상태는
음악으로도 비유할 수 있죠.
훌륭한 교향곡의 모든 음표와 악구는
작품 전체 내에서 제 자리를 차지하죠.
모든 부분은 전체의 웅장함 속에서
제 역할을 하죠.
그러니까, 당신이 인기 있는 아이라면
다른 사람들과 잘 놀 수 있고,
공유되고 사회적으로 협상된
정체성의 틀을 잘 받아들일 수 있다는 거죠.
당신이 바람직하고 사람들에게 인기 많은 성인이라면
아마 당신은 장기적 친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고,
자녀, 형제자매 또는 부모와 좋은 관계를 가지고 있고,
서로를 상호적으로 아껴주고 동기부여를 주겠죠.
당신의 제정신을 유지해 주는
친구와 가족이 주변에 있겠죠.
당신의 인간관계는 더 넓은 공동체로 통합하고,
자신의 시민 정체성을 더 넓은 집단 관계로 통합했겠죠.
여러분들이 오늘 밤에 한 일처럼요.
이 강연에 참석하는 것만으로 요.
주관적으로 정의된 자신의 좁은 정체성을
오늘 밤 벗어나기로 결정하셨고,
전체의 일부에 기여하는 거니까요.
그다음 지역 시민 공동체 위엔 주가 있고,
그 위엔 국가가 있고,
그 위엔 국제 질서가 있죠.
전체 계층 구조 내의 개인이 진정으로 제정신이 되려면
모든 요소가 실제로 동기화되고,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자신의 국가가 다른 국가와 전쟁한다면
자신이 얼마나 제정신일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여러분 모두 조만간 알게 될 기회가 올 게 두렵지만,
그렇지 않길 바랍니다.
개인의 정체성을 정의하는 것에 대한
보수주의자들의 관점이 멍청한 유아론자적
관점보다 훨씬 더 포괄적이죠.
무슨 2살짜리 아이처럼 자기 주관적으로 정의하죠.
그날의 기분에 따라 다른
자신의 정체성으로 다뤄달라고 요구하죠.
그 정체성이 뭔진 모르겠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도 공정한 정체성으로
협상하지 않으면서요.
보수주의자들이 젊은이들에게 전해야 합니다.
당신은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합니다.
삶의 재앙적인 시간을 견디게 해 줄 그 의미,
굴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가치 있는 일을 해야 하고,
그리고 그건 당신이 타인에게 제공하는 서비스로
자발적으로 짊어진 책임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건 순간순간 자신이 원하는 정체성이 되는 것보다
훨씬 더 나은 관점입니다.
단기적 쾌락과 자기만족에 구축하는 제약은
아무 의미 없다고 하는 것과 다름없죠.
권력과 폭정이라 칭하면서요.
매우 타락스러운 관점입니다.
특히나 젊은이들에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