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은 어둠보다 강하다
오물 속에서 찾게 될 것이다.
가장 찾고 싶은 것은
가장 보고 싶어 하지 않는 곳에서 찾게 된다.
즉, 당신이 똑바로 서서 가장 어두운 부분에
완전히 직면한다면
가장 어두운 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건
가장 밝은 빛이라는 겁니다.
이건 정말 발견할 가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당신 삶엔 끔찍한 어둠이 있을 것이고,
당신을 냉소적이고 쓰라리게 할 테니까요.
아마 당신은 충분히 바라보지 않았을 겁니다.
당신이 충분히 바라보고,
두려움을 피하려 하지 않았고,
모든 것을 쏟아붓고 직면했다면
공포보다 당신이 더 크다는 것을
깨달았을 테니까요.
당신의 냉소주의, 비관주의, 원한, 분노, 고집,
회피감으론 모든 걸 쏟아붓지 못합니다.
60%로 임했을지도 모르고, 그건 충분하지 않아요.
60%가 충분하기엔
너무 많은 부정적인 요소가 있으니까요.
90%나 95% 또는 100%가 필요합니다.
약 15 ~20년 전에 제 장모님은
전두측두엽 치매를 발병했고,
좋은 일이 아니었죠.
알츠하이머 같은 퇴행성 질환 중 하나이고,
그 빌어먹을 것들은 최악의 질병 중 하나입니다.
당신 눈으로 그 사람이 악화되는 것을 지켜봐야죠.
길고 긴 죽음입니다.
그리고 천천히 진행되죠.
그녀의 남편은 제가 자랐던 작은 마을에서 살았습니다.
그곳엔 약 3,000명이 살고 있었는데
그는 특별했고, 주민 모두가 그를 알고 있었죠.
저는 그에게 포그혼 레그혼 티셔츠를 선물한 적이 있죠.
그를 닮았으니까요.
그는 시끄럽고 과장스러웠지만, 항상 곧게 섰습니다.
그는 사람들의 즐거움을 위해
우스꽝스러운 척을 하기도 했지만,
결코 어리석은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전 그를 항상 존경하고 좋아했으며
그 또한 저를 좋아해 주었기에 다행이었죠.
전 그의 딸과 결혼했으니까요.
그는 정신 나간 친구들과 함께
북부 앨버타에서 술을 많이 마시곤 했고,
일을 많이 해서 집에 자주 없었습니다.
마을에서는 파티광처럼 보였겠지만,
좋은 상인이었고,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내가 병에 걸리고,
다른 도시로 이사했습니다.
그는 그녀를 15년 동안 돌봤고, 그건 엄청났죠.
그녀가 악화될수록
그녀는 그를 더욱 주변에 두고 싶어 했고,
그에 대한 사랑은 절대 변함없었습니다.
그녀가 자신을 거의 잃어갈 때도 말이죠.
그녀는 항상 밝은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가 방으로 들어올 때 마다요.
그는 그녀의 죽음 직전까지 그녀를 돌봤습니다.
하지만, 그녀를 양로원에 보내야 했죠.
의자에서 일으키기에는 이제 더 이상
힘이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에요.
우리는 그와 자주 만났습니다.
그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도와주기 위해서요.
집 안에 전자 기기로 그가 떠날 때를
그녀가 알 수 있도록 했고,
화장실에 녹음기를 설치해
그녀가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있도록 했죠.
우리는 이것이 지독한 경험이 되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끝까지 함께 했습니다.
그걸 지켜보는 건
정말 대단한 경험이었습니다.
그것은 장인뿐만이 아닌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모든 사람들에 대한 큰 존경심을 떠올리게 했죠.
새로운 역경이 생겼다면
그는 그것을 맡고 불평하지 않았으며,
할 수 있는 일을 하려 노력했습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지옥도 아니었죠.
그러다가 우리는 모두 임종 때 모이게 되었습니다.
가족들은 서로 꽤나 잘 어울렸습니다.
그녀의 자매들은 말기 환자 간호사 그리고 약사였기에
질병과 죽음에 특별한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어요.
꽤나 강한 집단이었죠.
어머니가 더 이상 음식과 음료를 섭취하지 않을 때,
어머니의 입술이 촉촉해지도록 했고,
그녀를 편안하게 해 주려 노력했고,
그들은 서로 어느 정도 잘 지냈습니다.
가족 불화는 찾아볼 수 없었기에 다행이었죠.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그렇게 끝났습니다.
하지만, 끝난 게 아니었죠.
가족들이 그 상황을 같이 견뎌내며
고귀하게 처리했다는 것이
그들을 하나로 뭉쳤으니까요.
전보다 서로 더욱 가까워졌고,
아버지에 대한 더 많은 존경심을 가지게 되었죠.
그리고 그는 요양원에서 한 여자를 만났는데
그 여자의 남편은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있었죠.
그렇게 서로를 알게 되었고,
서로의 배우자는 세상을 떠나갔습니다.
그리고 몇 달 후 그녀와 시간을 보냈고,
서로 좋은 만남을 이어갔고,
어느새 함께 살게 되었고,
그는 무언가를 얻었죠.
잃은 것을 대체한 개념은 아닙니다.
그의 집에는 여전히 그의 아내 사진들이 걸려있었고,
아내는 그의 사랑이었으니
그 감정이 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가족들도 그를 더욱 존경하게 되었고,
함께 더 많은 일을 해결하게 되었죠.
그녀의 임종은 지옥이 아닌
그저 비극적인 일이었을 뿐이었습니다.
가족들은 더욱 끈끈해졌죠.
이것은 어두운 곳에서 어느 정도의 빛을
발견할 수 있다는 좋은 예시였죠.
..
개인적인 수준에서도
이건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할 가치가 있습니다.
어리석은 일들을 내려놓으세요.
스스로 어리석다고 알고 있는 일들
그리고 가치 있는 목적을 선택하세요.
자신을 더 발전시킬 수 있는 일.
자신을 돌보라는 것에 가치가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일.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로 자신을 둘러싸며
당신의 성취를 기뻐하고,
실패를 안타까워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
어제의 자신과 비교하여 당신만의 가치를 찾으며
다른 사람들의 오늘과 비교하지 마세요.
질투와 적의를 품지 않도록
당신의 집을 정돈하세요.
자신의 무질서를 세상에 탓하지 않도록
의미 있는 것을 추구하려 노력하고,
진실만을 말하려고 최선을 다하세요.
그다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보세요.
자신을 기이한 기적의 결과라고 생각할 겁니다.
인간은 35억 년간 살아왔습니다.
당신의 모든 친척들 하나하나
성공적으로 번식해 왔고,
이 지옥 같은 세상,
쓰라림과 악의 속에서 모든 가능성을 뚫고,
당신 또한 태어나서 존재하고 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만이 알고 있습니다.
의식과 능력, 가능성에 대한 대면력
이로운 것으로 바꾸는 능력
그게 바로 우리라고요.
그게 서양의 이야기죠.
...
우린 국가의 중심에 서 있는 개인이고,
우리가 가져야 할 책임이고,
그게 바로 진정한 우리의 모습이죠.
그걸 알아야 하고 기억해야 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잠재력을 목격하고,
좋은 것을 얼마나 만들 수 있는지 볼 수 있으니까요.
아마 그게 당신의 빌어먹을 삶의 목적일지도 모르죠.
'행복하고 싶어'가 아니에요.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잖아요.
빌어먹을 문제들을 해결한 후에 행복해지라고요.
전 어둠을 보았기 때문에 배웠습니다.
빛이 어둠보다 더 강력하다는 것을 배웠고,
우리 각자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그게 바로 우리라는 걸 알아야 합니다.
잠재력과 모든 재앙을 대면하는 의식적 존재
우리라는 걸
그것이 우리를 하나님이 형상으로 만들어주고,
우리에게 내재적 가치를 부여하는 겁니다.
우리가 내재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건
국가의 기초적 전제입니다.
당신은 그것을 의심할 건가요?
아니면 그렇게 살아갈 건가요?
그것을 살아가는 게 낫습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