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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글귀 쇼펜하우어의 독설 죽음을 결심하고 삶을 포기한 자, 죽음이 두려워 삶을 살아가는 자, 두 가지 모두 용기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by SPW 2023. 4.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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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pect

쇼펜하우어의 독설

자살을 결심한 사람은 두려움을 모른다.

자살을 결심한 사람은 거리낌 없이 다리 위로 올라가고,

건물 꼭대기를 정원처럼 서성이고,

극약도 냉수와 함께 삼켜버린다.

몸에 석유를 뿌린 채 화로 속으로 뛰어들기도 하고,

총알이 비처럼 쏟아지는 전쟁터를 유유히 걸어 다닐 수도 있다.

그는 삶을 거부했기에, 삶으로부터 도피하는 것이

삶의 목적이기에, 죽음과 관계된 그 어떤 일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자살을 결심한 사람들을

용감하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그는 삶이 두려워 죽음을 선택한 것이기 때문이다.

죽음이 두려워 삶을 선택한 우리들도 마찬가지다.

죽음이 두려워 삶을 선택한 우리들도 용기가 없기는

자살을 선택한 자들과 다를 바 없다.

..

용감한 도피는 좌절과 허무에서 비롯된다.

시대의 권력을 버리고 시골로 내려가는 것은

권력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이 두려워서다.

어떤 사람은 때를 기다리는 것이라고 말한다.

적당한 시기가 올 때까지 물러서는 것뿐이라고 말한다.

도피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나 기다림 또한 피동적이기는 마찬가지다.

적당한 시기는 내가 만드는 것이다.

지금이 적당한 그때인지, 아니면 좀 더 기다려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것은 시대가 아닌 나 자신이다.

오늘날처럼 집단적인 용기가 결여된 시대도 드물 것이다.

사람들은 반문한다.

조직화된 사회에서 너의 개인적인 용기가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너의 용기가 이 세상에 어떤 작용을 일으킬 수 있느냐고,

이 한 목숨 잘 간수하는 것이 너의 용기라고.

그렇게 우리는 용기를 상실했다.

상실한 것이 아니라면 감추고 있는 것이다.

...

우리는 태어나던 날 각자의 품에 용기의 씨앗을 뿌렸다.

우리가 그것을 의식하고 있든, 모르고 지나쳤든,

우리의 운명은 우리 품에 뿌려놓았던 씨앗을 키웠다.

출세와 명예만을 도모하지 말고 천천히, 그리고 욕망을 덜어내고,

우리의 삶에 충실해진다면 용기는 저절로 솟아날 것이다.

우리가 용기의 이름을 부르지 않더라도,

용기는 자신의 날에 스스로 일어날 것이다.

한 사람의 용기가 위대한 이유는

그의 용기가 다른 사람의 용기도 깨우기 때문이다.

십자가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그리스도의 용기가

무지한 자들에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를 주었듯이,

나의 용기가 이 시대를 구원할 수도 있다.

운명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닮아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에게도 십자가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가 있다고 말한다.

지금이야말로 나의 용기가 필요한 때라고 말한다.

내가 서 있는 이곳이 나의 용기를 필요로 하는 그곳이다.

우리가 깨달아야 할 또 하나의 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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